안녕하세요. 님! 오늘은 영화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국내에선 1988년에 개봉된 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에 대해 들어보시거나 보신 분이 계실까요?
이탈리아의 명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선통제 `푸이`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청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태어나 평범한 정원사가 되는 한 남자의 일대기를 다루는 영화로 다소 정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비해 영화 내내 조명과 소품으로 비치는 강렬하고 아름다운 색감, 그에 못지않게 가슴을 뛰게 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 명작 영화입니다. 영화에 대해 잘 모르신다고 하더라도 위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Rain>은 TV에서 BGM으로 자주 사용되었기 때문에 `아 이 노래가 여기서 나왔구나!`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영상을 보면 영상의 초반 부분(정확히는 선통제의 즉위식 장면)에서 유달리 강조되는 색깔이 있습니다. 한번 쓱 보더라도 누구나 입 모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강조되는 그 색깔은 바로 '노란색'이죠. 마지막 황제는 노란 곤룡포를 입고 노란색 천을 걷어 노란빛으로 가득한 자금성 태화전에서 신하들에게 새로운 황제의 즉위를 알립니다.
영화에서 어린 선통제 '푸이'는 자기 동생이 노란색 옷을 입자 "노란색은 오직 황제만이 입을 수 있는 색이야!" 하면서 화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노란색은 황제를 상징하는 색깔로 여겨지며 지금도 노란색은 빨간색과 함께 중국에서 인기 있는 색 중 하나라고 합니다.
대륙의 주인으로 군림하던 푸이는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망국의 폐주가 됩니다.
마치 노란 은행잎이 낙엽이 되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듯 말이죠.
얼마 전이 바로 절기 중 '백로(白露)'였습니다.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쯤이면 밤 기온이 낮아지고 농작물에 이슬이 맺혀 가을의 문턱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시기라고 합니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무더운 날씨도, 녹색으로 가득했던 풍경도, 비가 내린 뒤 땅에서 올라오는 풋풋한 비 내음도 어느새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이제 그 공간을 옷장에서 꺼낸 머플러와 코트, 높고 청명한 가을 하늘, 그리고 낙엽이 떨어지는 쌀쌀한 가을이 대신 자리 잡을 겁니다.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며 괜스레 싱숭생숭한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옆구리의 빈자리를 쓸쓸해 하시는 분도 계실 테고 감성에 젖어 괜스레 추억에 잠기는 분도 계실 테죠. '가을 탄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을은 땅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처럼 외롭고 감성적인 계절이라 여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가을의 또 다른 모습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을은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논밭에서 일 년의 결실을 수확하는 풍요의 계절이자, 색색의 코스모스와 국화가 넘실거리는 꽃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무가 다시금 청록의 잎사귀와 예쁜 꽃 그리고 열매를 맺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 시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을의 모습은 결코 고독하고 쓸쓸한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 청나라 황제에서 폐위된 푸이는 그 이후에도 노란색으로 가득했던 화려한 과거를 잊지 못하고 당시 일본제국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황제로 즉위합니다. 어린 시절 세상의 주인이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는 그저 궁궐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고 주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허수아비에 불과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진정한 자유를 찾은 것은 모든 것을 다 잃고 회색 인민복을 입은 정원사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평범한 시민이 된 후에야 관광지가 된 자금성에 다시 발을 들여놓게된 노년의 푸이를 비추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노란 빛으로 가득한 자금성에서 푸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화려했지만 자유가 없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까요? 아니면 쓸쓸하지만, 자유가 있는 지금을 생각했을까요? 그에게 답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가을의 빛깔은 노랗지만, 그에 대한 사람들의 감상도 다를 것입니다. 누군가는 가을의 낙엽을 마지막 잎새처럼 생각하고 누군가는 책 사이에 껴놓을 책갈피로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죠.
<문학레터 오작교>는 노란 빛으로 물들 이번 가을, 여러분들의 책갈피가 되고 싶습니다.
님의 가을의 빛깔은 어떤 모습인가요?
설사 그 빛깔이 외롭고 쓸쓸하더라도 가을의 다른 면처럼 풍요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하시길 바라며 저는 다음 호에 또다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