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여러분들은 문화생활로 전시회 관람을 즐기시는 편인가요?
여기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이란 제목의 한 작품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작품과는 다르게 액자에 들어가 있지 않고 그림의 반은 밖으로 나와 있으며 심지어 파쇄된 상태입니다. 님은 이 그림의 값어치를 얼마로 보시나요? 0원? 100만 원? 1억 원? 놀랍게도 이 그림이 경매장에서 낙찰된 가격은 104만 2천 파운드, 한화로 약 16억이나 되는 금액에 팔렸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낙찰된 직후에 일어났습니다. 경매사가 낙찰을 확정 지으며 망치를 내리치는 순간 액자 안 캔버스가 아래로 흘러내리더니 사진처럼 그림이 파쇄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납니다.
이 소동의 범인은 다름 아닌 그림의 작가 뱅크스(Robert Banks)였습니다. 본인이 직접 액자 안 파쇄기를 설치하고 경매를 지켜보다가 낙찰된 순간 리모컨으로 파쇄기를 원격조종하여 그림을 망가뜨리는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찍어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입니다. 평소에도 미술계의 허영심과 겉치례를 비판하는 행위 예술을 했던 그가 이번에는 낙찰된 본인의 작품을 파쇄하면서 예술을 돈으로만 보는 사람들을 비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후의 이야기가 더 재밌습니다. 작품을 구매한 사람은 구입을 취소할 수 있었으나 오히려 미술사에 남을 퍼포먼스라고 좋아하며 그대로 구매하였고 해당 그림은 2021년 다시 경매에 나와 이전보다 18배 오른 1,850만 파운드(약 300억 원)에 낙찰이 되며 오히려 뱅크스 작품 역대 최고액을 기록하게 되었고 자본에 잠식된 예술을 비판하려던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지금도 뱅크스의 다른 작품들은 엄청난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습니다. 미술계를 비판하려던 그의 퍼포먼스마저 예술로 보고 값어치를 매기고 있는 것이죠.
영화는 어떨까요? 우리는 대개 영화를 보기 전에 평론가들의 비평부터 확인합니다.
물론 전문가들의 평가인만큼 영화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사전에 알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는 합니다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평론가의 관점과 일반 관객들의 관점에서 비롯되는 괴리로 인해 분명 평론가들은 극찬한 영화라고 해서 봤지만, 생각보다 별로였던 적이 한 번씩은 있으실 겁니다. 오히려 TV 채널에서 시도 때도 없이 주야장천 틀어주는 철 지난 킬링타임용 영화에 더 몰입하여 보신 적도 있으실 테고요.
자!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여러분에게 던질까, 합니다.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요?
도서 시장이 사양세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매년 수많은 작가가 새롭게 등단하고 매해 국내외 문학상에서 수상 이력이 있는 많은 작품이 신간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많은 책 중에는 예로부터 고전으로 평가받는 유명한 작품들부터, 평론가들이 극찬했다는 책도 있고 세계적인 문학상에서 수상한 책도 있습니다.
저도 책을 좋아하는 도서관 사서로서 정말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런 책들을 읽다 보면 제 취향에 맞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서 아닌 책들은 몇 번이고 시도를 해봐도 아직까지도 완독하지 못한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시를 들자면, 일본의 대문호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있습니다.
이 책이 한국에 발매된 직후 아실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엄청난 유명세와 함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카페나 야외 테라스 같은 곳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1Q84>를 읽는 사진이 싸이월드에 우후죽순처럼 올라왔었죠. 그 당시에도 그렇게 사진만 찍고 책은 다시 가방에 넣는 허세, 과시용이라고 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를 포함 그런 사진을 올렸던 사람들 대부분이 책이 아닌 하루키의 작품을 읽는다는 대외적인 이미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었던 것이죠.
누구의 평가도 아니고 남들도 다 읽어서 읽어야 하는 그런 숙제 같은 책이 아니라 내가 읽었을 때 행복하고 그 자리에 몰입하여 읽을 수 있는 책이야말로 '나'에게 좋은 책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예전에 읽었던 책 중 여러분들께도 소개해 주고 싶은 문구가 있어 간략하게 이 자리를 빌려 옮겨보고자 합니다.
"책이 좋은 것은 언제든지 그것을 덮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그가 읽은 책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책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이점이다"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 최윤정, 2018
재미가 없더라도 한번 자리에 앉으면 상영이 끝날 때까지 앉아있어야 하는 영화나 연극과 다르게 책은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원할 때면 언제든지 책을 덮을 수 있고 어떤 책에 몰입할지, 거기서 빠져나올지는 오롯이 책을 펼친 본인의 몫인겁니다.
앞서 언급한 뱅크시는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던 2013년 또 다른 행위 예술을 진행합니다.
갤러리에서는 비싸게 거래되는 자신의 그림을 무명 화가의 작품인 것처럼 대역을 세워놓고 길거리에서 판매한 것이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작품당 60달러(한화 약 7만 원)에 판매했지만 하루 종일 팔아도 겨우 3명만이 그의 작품을 구매했다고 합니다. 후에 뱅크시가 자기 작품이라고 밝히며 결과적으로 작가의 이름과 판매 장소가 아닌 순수하게 작품성을 보고 산 사람들은 단돈 60달러로 1,850만 달러의 작품을 만드는 작가의 작품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님만의 좋은 책도 의외로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한번 집 근처 도서관으로 오셔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서가를 천천히 한번 둘러보세요. 그리고 아무런 정보 없이 끌리는 제목, 끌리는 표지에 따라 책을 꺼내서 그 자리에서 읽어보세요. 맘에 안 들면 다시 꼽으면 그만입니다. 천천히 그 행위를 즐기면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분명 내 취향의 좋은 책을 가질 수 있는 순간이 올 겁니다.
날이 본격적으로 추워졌습니다. 입동인 오늘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따뜻하기를 바라며 저는 이만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발행이 벌써 <문학레터 오.작.교>의 마지막이네요!😪
11월 22일 수요일에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호에서 만나요!!( •̀ .̫ •́ )✧